토요일 신문을 읽다가 <작고 미미한 것의 힘>이란 사설을 읽었다. 글쓴이는 글의 끝머리에서 목적을 밝혔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썼던 에른스트 슈마허의 <굿워크> “작은 일터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든다”를 인용하며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작고 미미한 것을 다시 보라며 고용 정책 수립자들에게 한마디 던졌다.
“… 중국인들이 올해의 한자로 꼽은 것은 “작고
미미하다”는 뜻의 ‘미(微)’였다. … 크고 육중한 것은 한순간에 날아가도 작고 미미한 것은
삶의 구석구석 어딘가에선가 질긴 생명력을 지속하기 때문이리라.”
자소서를 쓰기 위해 내가 대학입학
후 어떤 일을 해왔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때가 많다. 자칭타칭 아싸로 불리우는 만큼 대외활동과 신기한
여러가지 아르바이트 등 열심히 했는데 그동안 내 ‘스토리’에
귀 기울여준 기업은 몇 없더라. 내가 조리있게 ‘텔링’하지 못한 이유도 있겠지만, 서류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커보이는’ 스펙을 고르는 나 자신을 보며 서글퍼졌다. 그 당시 상당히 설레게 했던 작지만 즐거웠던 기억과 소중한 경험들이 하찮아지게 되었으니 말이다.
작고 미미한 것이라…
요즘 구직자와 대학생의 자소서가
천편일률적이라 평하고(내 것을 포함해) 하나같이 어떻게 그리
전부 같은 스펙과 스토리를 가졌는지 이상하다고들 말한다. 구직자가 ‘똑
같은 이야기’를 하는데 에는 여러가지 사정이 있다. 사회에서
원하는 것을 따르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고, 주입식 교육을 벗어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자 떠난
배낭여행이 20대에 꼭 해야할 일로 받아지게 된 이유도 있으며, 좋은
마음에 나선 자원봉사는 그저 보여주기식 스펙으로 비추어 지기도 한다. 물론 ‘필요’에 의해 차곡차곡 쌓아온 스펙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해 인생의 자율권을 손에 쥐고 설레는 마음으로 진취적인 배움과 경험을 위해 내가 해온
나의 작은 업적들이 그렇게 간단히 평가되는 것이 억울하기도 하다. 외국 친구를 사귀며 서로 다른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고, 이에 호기심을 느껴 미지의 세계로 여행도 가고, 그것을
계기로 외국의 학교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욕심들. 그 일련의 사건과 나의 성장에는 왜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걸까. 작은 경험을 통해 내가 얻은 것들,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해온 내 내면의 자산들을 어떤 기준에 따라 평가하게 될까.
스무살 새내기, 전역한 복학생들, 끓어오르는 열정과 피를 가진 젊은이들. 우리가 지나온 자취는 제각기 나름의 빛을 발하고 있다. 남들이 보았을
때 별것 아닐지 몰라도, 우리, 나 자신만큼은 ‘작고 미미한 것’의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이끌어줄 그 어딘가를 기대하며
그러한 선택을 했다. 그게 여행이든, 봉사든, 공부든 말이다. 실수하면 어때, 엎어지고
깨지면서 배우는거다 하는 생각으로 말이다. 그게 인생이 아닐까 생각했고, 한치 앞 미래를 알 수 없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싶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