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21, 2010

12.20.10. - 영화보기: 남극의 쉐프 南極料理人 2009



일본영화는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극, 자극, extreme 등에 익숙해져서일까? 잔잔한 이야기들에는 하품이 나온다는 사람들.. 모든 작품과 작가, 배우 등을 묶어서 말하고 싶지 않지만 일본 영화나 드라마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흔한 소재 외의 것들을 볼 수 있어 매력적인 것 같다. 식상한 이야기나 대리만족을 위한 것들 말고 (비리가 난무하는 정치판, 재벌들, 숨겨진 가문의 비밀, 현대판 신데렐라, 불륜, 사랑, 이별 등등...)

영화를 다 보고 찾아보다 알게 된 것인데, 이 영화는 실제 남극관측 대원 중 조리 담당으로 파견되었던 니시무라 준의 에세이 "재미있는 남극요리인"을 영화화한 것이라고 한다. 접할 기회가 없어 남극의 기지와 그곳이 어떤 곳인지 등에 대해 전혀 몰랐었다. 영화에 나오는 돔 후지 기지는 해발 3,810m에 평균 기온 -54'c라는 극한의 기후를 가진 곳이다. 너무 추워서 펭귄이나 바다표범 심지어 바이러스 조차 살 수 없는 곳. 그곳에서 8명의 관측대원들은 1년반을 보내야 한다. 8명의 대원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남극이라는 극한의 곳에서 외로움과 싸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와 외로움, 그것을 치유해 주는 니시무라의 남극 기지 생활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기상학자 대장; "내 몸은 라면으로 만들어져 있어" 매일밤 라면을 먹고 잠이 드는 사람. 어느날 라면이 동이 나자, 병이 나버린다. 마음의 병. 외로움을 이기는 '한 가지'랄까, 대장에게는 라면이었나보다. 그걸 잃어버린 대장은 실의에 빠져버린다. 대원들이 자신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것이 보람인 니시무라는 힘없는 대장을 위해서 직접 면발을 만들어 낸다.


빙하학자 모토; 30만년 동안의 기후를 보여주는 코아 라는 것을 연구하는 모토. 딸과 부인을 그리워한다. 가족을 일본에 남겨놓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 간 그에게 화가 난 부인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다.

빙하팀원 니이얀; 대학원 생으로 남극에 연구원으로 온 막내. 대원들이 잠이 든 사이 1분에 740엔이라는 엄청난 국제전화비는 개의치 않고 여자친구에게 매일 전화를 한다. 어느 날 여자친구가 변심한 것을 알게 된 니이얀은 상심에 빠져버리는데, 전화를 연결해주던 통신교환원 시미즈에게 사랑의 싹이 터버린 청년.

차량담당 주임; 남극 탈출이 목표인 사람. 트럭안에서 만화책 읽기가 특기. 털보(?) 남극기지의 가장 소중한 자원인 물부족의 원인. 한밤중에 뜨거운 물을 틀어놓고 샤워하다가 다른 대원에게 들통이 나버린다.

대기학자 히라; 네 명이 전부인 중국문화연구회의 마작 일원. 

통신담당 료; 스트레스로 인해 먹는 것이 즐거움이 되어버린 남자. 부엌 구석에서 버터를 통째로 먹다가 니시무라에게 들통난다. 

의료담당 닥터; 가장 낙천적인 성격. 귀국 후 철인3종 경기를 목표로 속옷차림으로 눈보라를 헤치며 자전거를 타는 남자. 

조리담당 니시무라; 까칠한 딸의 빠진 이를 보물마냥 지니고 다니는 사람. 대원들의 외로움을 요리로 치유해주는 남자. 대원들이 정신없이 먹는 것을 보는 것은 생활의 즐거움이자 보람. 그가 그리운 것은 투덜대는 딸아이, 부인이 만들어준 눅눅한 닭튀김이다. 대원들이 처음 차린 밥상에서 먹은 그 서툰 닭튀김에 니시무라는 엉엉 울고 말았다.



이 영화를 보는데 왠지 나의 유학생활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외롭고 쓸쓸하고 작은 것에 예민해지고 쉽게 삐지고 그리워하고.. 1년반이 그리워 탈출하고 싶은 대원들도 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돈달라는 아들도 바가지 긁는 아내도 없으니 극한의 기후에서 단련된 몸으로 즐겁게 살아보자! 하는 닥터도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아주 가끔씩 여기서밖에 할 수 없는 일, 예를 들자면 30만년의 기후를 보여주는 얼음봉 꺼내어 연구하는 일이라 가족을 떠나 꿈을 좇아 남극까지 올 수 밖에 없었던 대원이나.. 유학하고 있는 '나'의 한면들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글쎄, 뭐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도 있고, 무엇을 쫓아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답이 있을까 싶다. 대원들이나, 나나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 언제 또 찾아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또 힘을 내야겠다 라는게 메세지 일까? 나중에 펼치면 유쾌할 그의 에세이처럼 즐거움과 고통 + 감사해야할 이 시간들을 소중히 여겨야 겠다. 남극을 떠나던 날, 불꺼진 기지의 공간들과 자신의 주방을 이 구석 저구석에서 애틋하게 바라보며 아쉬워하는 쉐프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영화의 포인트: 니시무라가 내오는 음식들. 때로는 엄마가 차려준 소소한 저녁밥상, 6월하순 찾아오는 기지의 mid winter festival에는 푸아그라같은 고급음식..과 어울리지 않는 투박한 플랜카드. 





**회로 먹어야된다는 조리담당 말안듣고 징징대서 해준 초대형 새우튀김.





Sunday, December 19, 2010

12.19.10. - 글쓰기로 돌아가기

오랜만에 혜령이 블로그를 다녀왔다. 시험친다, 귀찮아졌다 핑계대면서 블로그를 하지 않은지 두달가량 되어가는 것 같다. 녀석은 그동안 참 많은 글을 써왔다. 싸이에 쓰기 낯간지러운 글들이라면서.. 

나는 펜으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일기장에 두서없이 써내려가는 한두줄이 좋고 아무데서나 꺼내어 끄적여대는 그림그리기가 좋다. 로그인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읽고 무슨 생각을 할까 걱정하며 쓰는 글들이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었다. 블로그가 이력서마냥 취업의 필수수단이 되자 시작한 이 블로그에 정이 안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 같다. 혜령이 블로그에서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을 읽고 내 블로그에 왔더니, '보여주기'용의 스크랩들과 말투가 참 불편하게 느껴졌다. 

졸업하고 나서 튀어나오든, 버벅거리든 영어로 말해야만 했던 일상들이 없어지고 온종일 집에만 있다보니 이제는 말할 일이 없어졌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쓸 일도 없어져 버렸다는것.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지만 가게에서, 은행에서 사람들과 부딪힐 때마다 걱정스러웠다. 전화통화를 해야하는 상황들도 꺼려졌다.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스크린과 대화하고 한국 tv를 보며 희죽대는 것이 전부이다보니 말하는 방법도 글쓰는 방법도 조금씩 까먹었다. 좋아하던 일기조차 쓰지 않아 나의 글투도 잃어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농담반으로 영어도, 한국어도 까먹어간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정말 걱정된다. 스무해가 넘게 산 곳의 언어와 이년이 넘게 살고있는 곳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있다니.. 참 슬프고 한심한 일이다.


혜령이의 일기같은 블로그를 보니, 나도 뭔가 나의 생각의 발자취를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음악, 뮤지션에 관한 이야기라든가, 피곤한 취업준비라든가, 보고싶은 은사님과의 추억이라든가.. 내 안에서 뭉뚱그려져 맴돌기만 하던 이야기들을 적어보아야 겠다. 보이는 것에만 익숙해 수동적이 되어버린 나에게, 펜을 들어 쓰고 그릴 기회를 다시 주고 싶다. 나의 이야기에 가상에서든 종이위에든 모습을 주고 싶다. 


그래서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이제부터는 이 곳에 정을 붙이고 글을 써볼까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